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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17.7.13 목 12:34
오피니언신성덕 칼럼
한양도성을 걸으며 역사를 만나다(5)(6)
신성덕 기자  |  mhy3665.mh3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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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28  11: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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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서울뉴스  신성덕 기자 : 한양도성의 북악산구간, 낙산구간, 남산구간, 인왕산구간은 모두가 특색이 있으며 계절별로 아름다움을 선물해 주고 있다. 특히 인왕산 구간을 지난해 가을에 방문 한 팀이 금년 새봄을 맞아 다시 한번 인왕산 구간을 찾아 주었다. 지난 해에 시간이 부족하여 찾지 못한 부분을 중심으로 더 자세히 해설 해 주었다. 한양도성 해설을 듣고 계속해서 글을 쓴 김영숙 회원이 아래와 같이 글을 보내 주었다.

   
   
   
   
 

한양도성을 걸으며 역사를 만나다(5)

2016,10,21(금)
오전 7명이 숭례문 광장에 모였다. 오늘은 해설사 신성덕 교수님을 우리가 반갑게 맞이해 드렸다. 답사 때마다 먼저 우릴 기다려주신 교수님께 답례 하기 위해서다. 애지모 회원 2명도 새로이 참석하여 반가웠다.

우당기념회에서 진행했던 성곽 답사에 처음 참여하면서 인연이 되어 시작했는데 벌써 다섯 번째다.

한양도성을 따라 걷는 길은 서울의 내사산(북악산, 남산, 낙산, 인왕산)을 잇고 동대문(仁흥인지문),서대문(義돈의문), 남대문(禮숭례문), 숙청문(智숙정문)의 사대문과 창의문, 혜화문, 광희문, 소의문의 사소문을 포함하여 다양한 문화유산을 지나는 총 18.627km의 역사와 문화 체험의 길이다.

외사산은 아차산, 관악산, 북한산, 덕양산이라고 알려 주신다. 성곽 길을 처음 시작했을 때 들었지만 기억이 새롭다. 역사는 억지로 외워서 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익혀 나가야 한다고 하시는 말씀에 공감이 간다.

1962년 국보 제1호로 지정된 숭례문은 조선시대 서울 성곽의 정문이다.
'예를 숭상한다’는 의미의 숭례문 앞에서 우린 인증 샷을 하고 해설사이신 신성덕 교수님의 설명을 들었다. 태조7년(1398)에 건립했으나 숭례문 지대가 낮아 도성을 포근하게 안아주는 풍수적 기능을 못한다 하여 세종이 인왕산과 목멱산의 지맥을 연결한 위에 다시 성문을 만들어 세종30년에 완공하여 ‘신작숭례문’으로 기록되어 있단다.

임진왜란이나 6.25 전쟁 중에도 제 모습을 잃지 않고 600년을 꿋꿋이 버텨온 숭례문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다. 그런데 2008년 2월 10일 방화 화재로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우리 민족의 강인한 정신을 상징하기도 했던 숭례문이 석축만 남기고 누각이 붕괴되었을 때 온 국민들이 얼마나 안타까워했던가?

복원 공사로 2013년 5월 준공하여 공개 되었다. 누각형 2층 건물로 석축 중앙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이 아름답다. 숭례문 좌우로 성곽이 복원된 모습이 보인다.
숭례문의 복원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이 많았지만 그래도 모습은 얼마나 단아하고 예쁜지...
흥인지문처럼 숭례문에도 누조가 4개 있고 전각의 위상과 품격을 높여주는 궁궐 장식인 잡상들이 지붕위에 각각 7개, 9개가 있다. 잡상이 가장 많은 곳은 경회루로 11개란다. 벽에 일제와 한국동란을 겪으면서 난 총탄 자국이 있다. 참 잘 버텨줬구나.

화재로 떨어진 숭례문의 현판은 한 몸체로 된 목재가 아니라 38개나 되는 여러 시대 나무의 조각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다. 그동안 많은 외침에 시달리고 여러 차례 보수되어 왔음이리라. 다른 문들과 달리 세로로 쓰여 있는 숭례문 현판의 글씨는 화재 후 지덕사에 보관중인 양녕대군 탁본을 토대로 복원한 것이라 한다.

풍수지리설에 의해 불꽃이 일렁이는 모습의 관악산과 마주보고 있는 경복궁까지 불기운이 미치지 않도록 현판을 세로로 세워서 달았다고 설명해 주신다. 화기를 맞불로서 꺾기 위해서다. 또 숭례문 밖 남쪽에 있는 연못 남지를 만들어 숭례문의 소방서 역할을 했단다.
볼수록 들을수록 숭례문에 애착이 가지만 다음 지역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숭례문 건너에 남지 터의 표지석이 있다. 건국 초에 화기방어 목적으로 만들어졌는데 조경의 가치도 있어 남지 복구 후 한양의 명소로 사랑을 받았단다. 1907년 일제에 의해 메워져 지금은 터였음을 알리는 표지석만 남아있다. 교수님은 1926년 일본인이 남지터에 건물을 짓기 위해 기초 공사를 하던 중 발견된 ‘청동용두의 귀'의 귀한 사진 자료를 보여 주셨다. 용은 원래 불을 막는 영물로 숭상되어 왔단다.

조선통신사가 국서를 받들고 출발했던 길에 표지석이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앞이다. 상공업의 진흥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설립 운영되고 있는 상공회의소는 1953년부터 71개소에 설립되어 있다. 지역별로 각 지역의 돌에 등록한 연도가 표시되어 있다.

남대문 구간은 숭례문에서 돈의문 터까지 이어지는 구간인데 빌딩 건축으로 성곽을 찾기는 어려웠다. 대한상공회의소 성곽 길도 바닥에 돌로만 표시되어 있다. 한양도성의 일부 구간으로 황해도 사람이 석축한 곳. 속초 시에서 기증한 가로수 소나무들이 우중충한 거리를 푸르게 비쳐주었다.

소덕문은 없고 조그만 소덕문 표지석만 있다. 소덕문은 한양도성 4소문(小門) 중의 하나. 서쪽의 소문으로 인천과 강화 방면을 연결하는 관문이었단다. 태조 때 다른 성문과 함께 지어졌을 때는 소덕문이라 했다고. 소덕문은 광희문과 함께 시신을 성 밖으로 운반하던 통로 구실을 해 왔으며 서소문으로도 불리었다. 도시계획 구실로 우리의 문화재를 함부로 철거해버린 일제는 우리의 혼까지 말살하려 했던가. 교수님이 주신 사진의 소의문의 모습이 애처롭게 보인다.

정동 길은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 능인 정릉이 현재의 정릉동으로 옮겨가기 전에 있었던 것에 연유하여 정동이라 하였단다. 각국 외교의 중심가였고 선교활동의 근거지였고, '배재학당, 이화학당' 등 신학문의 산실이었다.

붉은색 벽돌 건물인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으로 들어섰다. 1916년 세워진 옛 배재학당의 동관 건물로 지금은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동관과 똑같은 모양의 서관이 동관과 마주보고 있었는데 1984년 이사 간 강동구 고덕동 새 학교 교정에 서관 건물을 그대로 옮겨놓았단다. 이승만, 주시경, 나도향, 김소월 등이 배재고 출신이었다. 배재학당은 미국 선교사 아펜젤러가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학교이다. '인재를 배양하라'는 뜻의 ‘培材’ 학교 이름을 고종이 하사했단다. ‘欲爲大子 當爲人役’ 인성교육이 바탕이 된 기독교 교육이념과 아펜젤러의 교육철학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감리교회 정동제일교회다. 사적 제256호. 고딕풍의 붉은 벽돌 건축물이다.
배재학당을 설립한 아펜젤러 선교사가 1887년 세웠다. 정동에 마련한 한옥 집에 예배실을 설치하면서 정동교회가 시작되었다고. 1898년 완공된 명동성당과 함께 당시 장안의 명소가 되어 서양식 결혼식을 치르기도 했고 이승만, 유관순의 장례식을 여기서 치르기도 했단다. 이 땅에서 희망을 본 아펜젤러는 배를 타고 목포에 가는 중 배 충돌 사고 익사한다. 자신의 목숨을 씨앗으로 심은 것이다.

이화학당 구내에 지은 보구여관保救女館은 1887년 감리교 의료선교에 관리자였던 스크랜튼 선교사가 정동에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부인병원으로 이화여대부속병원의 전신이란다. 민비는 이런 의료사업을 치하하고 격려하는 뜻으로 ‘보구여관’ 이름을 하사하였다. 또한 메리 스크랜턴이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여성전문 교육기관 이화학당은 개교 이래 125년 동안 6만 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한 유서 깊은 곳이다. ‘배꽃처럼 순결하고 아름다우며 향기로운 열매를 맺으라’는 의미의 '梨花'는 학교 설립 이듬해에 명성황후가 지어주었단다.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우리나라 여성교육의 산실 이화여고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건물인 심슨기념관(이화 박물관)이 한 눈에 보인다. 미국인 심슨이 이 건물의 건축기금을 기부했는데 2006년 개교1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화박물관으로 꾸며 놓았단다.

박물관 들어가기 전 음료를 마시며 잠깐 쉬었다. 유관순 동상이 눈에 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슬픔이다’고 했던 유관순열사는 어린 나이에 어떻게 이런 말을 해내고 목숨을 바쳤을까?

'이화 100주년기념관'자리의 표지석에는 ‘한 말에 러시아에서 온 손탁이 호텔을 건립. 내.외국인의 사교장으로 쓰던 곳’이라 적혀 있다. 호텔 1층에는 서울 최초의 커피숍이 있었단다.
영국 총리 처칠도 러일전쟁 때 특파원으로 조선에 들어와 이 호텔에 묵었고 <톰 소여의 모험>을 집필했던 미국의 소설가인 마크 트웨인도 이 호텔에 묵은 적이 있다고 한다. 후에 경영난에 빠져 이화학당에 넘어가 기숙사로 사용하다 헐렸다고. 100주년 기념관 자리에 표지석만 남아있다.

현재 창덕여중이 위치한 자리는 개화기의 공사관 중 가장 빼어난 외관을 자랑했다는 옛 프랑스 공사관이 있었던 곳이다. ‘RF1896’ 이라고 적힌 당시의 정초석이 창덕여중 구내에 남아있다. 성벽 너머로 보이는 공사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하는데 1935년 서대문 소학교가 세워지면서 철거되었다고 하니 아쉬울 뿐이다. 운동장 끝에는 지금도 신사 참배하던 단이 있다.

이렇듯 정동은 우리의 역사가 곳곳에 남아있는 곳이었다. 옛 정취가 묻어나는 참 정겨운 거리이다. 역사와 문화의 거리인 정동 길을 걸으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역사를 알아가고 있다. '대한제국의 길'로 조성하려고 한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개화기 이래로 서양인의 최초 정착지가 되었으며 다른 지역으로 진출하는 교두보의 역할도 했다.
창덕여중 후문은 서울성곽이 지나가는 자리여서 다음에 이곳부터 인왕산 구간을 걷기로 했다.

경향신문 본사는 1969년 8월 브라운관 TV를 형상화해 김수근이 설계한 정동 MBC건물이었다. 배고플 즈음 교수님은 이 건물 맛 집으로 안내하신다. 매생이 콩나물 국밥을 맛있게 먹었다. 우리 일행은 듬뿍 담긴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잠시 즐거운 시간을 갖고 일어섰다. 오늘도 멋진 해설 해주신 신성덕 교수님께 감사하고 참여한 우리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2017.03.11(토)

한양도성을 걸으며 역사를 만나다(6)

오늘도 해설사 신성덕 교수님께서는 20분 전에 먼저 와 계셨다. 새로운 애지모 아이 회원까지 참여하여 반가웠다.

서대문 5번 출구에서 만나 역 부근의 농협중앙회 건물과 농업박물관, 쌀 박물관도 있음을 보면서 창덕여중 후문의 성곽을 찾았다. 후문 쪽으로 지나가고 있는 서울성곽을 보기위해서다.
이화외고 건물사이로 들어서니 창덕여중 담벼락이 보인다. 담벼락 축이 옛 성곽이었다. 학교를 세우다가 발견되어 이용했으리라. 창덕여중 후문의 오른쪽에는 태조 때 성곽, 왼쪽으로 숙종 때 성곽이다. 이곳의 성벽 터는 서대문과 소의문 사이에 위치했던 곳으로 서대문과는 아주 가까웠다. 도시계획 한다고 일제가 모두 허물어 버려 축대만 남아있다.

골목에는 청춘극장이 있어 옛 영화들을 상영 중이다. 어르신들이 옛 영화의 추억을 그리며 보기 좋은 극장이다. 해설을 하시면서 영화 평론도 하시는 신성덕 교수님께서 의미있는 '강화도령' 영화도 볼 수 있도록 해 주신다고 하셨다. 문화일보 건물이 역사를 자랑한다. 1991년 현대그룹이 창간한 석간신문 발행. 당시 삼성 중앙일보와 재벌 간의 매스컴의 상징이기도 하다.

돈의문 터로 가는 길 건너에 있는 4.19 재단의 건물은 전 부통령 이기붕 집터란다. 4.19이후 4월 28일 경무대 관사에서 이기붕, 박마리아, 아들 강석, 강욱 온가족이 집단자살 하였다고.

강북삼성병원 앞 담장에는 ‘돈의문 터 1422~1915 ’라고 씌어 있다. 고종30년(1899) 돈의문으로 전차가 다닐 때만 해도 성곽은 헐리지 않고 온전하게 남아있었으나 일제가 전차궤도를 복선화한다는 명목으로 성문을 헐었다고 한다. 1915년 이렇게 아름다운 돈의문은 헐려 자체를 잃고 만다.

경교장(사적 제465호)을 가는데 강북 삼성 병원 안으로 들어선다. 강북삼성 병원 안에 경교장이라 써 있는 건물이 보인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金九)선생의 숙소이자 환국후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이다. 안두희에게 암살당한 곳이기도 하다.

이승만(전 대통령의)의 ‘이화장’, 김규식의‘삼청장’과 함께 건국활동의 3대 요람으로 불리는 역사적인 의미와 가치가 큰 이 경교장이 병원 건물에 묻혀있다는 느낌을 받고 참 씁쓸했다. 경교장 2층 백범 기념실에는 1949년 6월 26일 안두희가 백범을 향해 쏜 총알이 관통했던 유리창 모형을 재현해 실제 창으로 활용하는 방법으로 전시해 놓았다. 돌아서는 발걸음이 꽤 무겁다.

송월동 관측소 경희궁 후원 높은 곳에 서울 기상의 기준 역할을 했던‘경성측후소’가 있었다. 광복 후 ‘중앙기상대’로 이름이 바뀌었고 이후‘기상청’으로 승격되어 신대방동으로 이전했다. 교수님께서 ‘서울의 첫눈은 이 곳에 내려야 첫눈이 왔다고 한다’고 하시자 모두 웃었다. 모든 기상 현상의 기준이 되는 곳이란다.

월암 공원에서는 태조 세종, 숙종 때의 성벽 특징들을 월암 공원 한 곳에서 볼 수 있었다. 태조때의 성곽은 자연석으로 쌓아 올린 형태였고, 1422년 세종이 개수할 때에는 아래쪽은 규격이 큰 돌에서 시작하여 위쪽은 비교적 작은 돌을 크기 순서로 축조하였다.

1704년 숙종 때는 거의 비슷한 규격의 돌로 쌓아 올리고, 1800년 순조 때는 같은 크기의 큰 정사각형 돌로 쌓아 올린 형태였다. 인조 때는 청나라 태종의 침략을 받고 협약에 따라 성곽 축조를 금지시켰다. 그러나 70여 년이 경과한 숙종 때에는 청나라의 간섭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으로 성곽을 개축한 것이라고 한다. 토산상말( 세종 황해도 금천군 토산면) 각자가 보인다.

작곡가 겸 지휘자로 활동한 홍난파 가옥은 1930년대 독일 선교사가 벽돌로 지은 서양식 건물로 1930년대 서양식 주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어니스트 베델 집터 표지판이다. 베델은 대한제국에서 활동한 영국인 언론인. 특파원 자격으로 대한제국에 들어와 일본제국의 침략을 보도한 분이란다.

골목으로 들어가며 해설사님께서 빌라 사이에 있는 성곽을 잘 확인해 보라시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세원빌라에서 홍파빌라 사이 주차장 안으로 성곽돌이 보인다. 거의 가려져 있어 그냥 지나칠 뻔하지 않았는가? 안타깝다. 한양도성에 대한 건축 규제를 왜 지키지 않고 빌라를 건축했을까?

사직터널 부근에 붉은 벽돌의 특별한 앙식 집 딜쿠샤 Dilkusha가 보인다. 일제강점기에 앨버트 테일러가 직접 지은 건물이란다. 힌두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 이라고. 오랫동안 ‘귀신 나오는 집’으로 불렸던 이 벽돌집이 딜쿠샤라는 이름을 되찾게 된 것은 2006년 테일러 부부의 아들 브루스가 한국을 방문해 딜쿠샤의 사연을 이야기하고 관련 자료들을 서울시에 기증하면서부터다.

미국의 기업인이자 언론인인 앨버트 테일러(Albert Taylor)가 부인 메리 테일러(MaryTaylor)와 함께 살던 집이다. 그는 조선에서 아버지와 함께 금광과 무역 사업을 하던 기업가이고, 고종이 승하했을 때 미국의 통신사인 UPI의 서울 특파원으로 활동하면서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날 무렵 독립선언서를 입수하여 동생을 통해 몰래 외국으로 보내 3.1 운동을 세계에 알린 인물이란다. 이후에도 일본군의 수원 제암리 학살사건을 취재하고, 일본 총독을 찾아가 조선인 학살에 대해 항의했다고 한다. 이런 사건들로 그는 서대문 형무소에서 6개월간 복역하기도 했고 1942년 미국으로 추방되었다고.

테일러는 1948년 미국에서 사망한 이후 유언에 따라 서울 마포 양화진 외국인 묘지 공원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서울시는 딜쿠샤의 문화재 지정을 추진할 계획을 발표했단다. 대리석 주춧돌에 써 있는 ‘DILKUSHA 1923’ ‘PSALM CXXVII-I’(시편 127장 1절) 시편 127편 1절이라고 말씀해 주신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벽의 휘장에도 써 있던 내용이 이것이었구나.

수령 460년 정도 된 은행나무가 있는 곳은 임진왜란의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권율장군의 집이 있던 곳이다. 성곽을 따라 조금 더 걸어가니 양의문 교회 앞으로 성곽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성곽은 길을 따라 이어지는데 원래의 성곽은 땅속에 묻혀있고 현재 성곽은 새롭게 복원된 것이란다.

서울한양도성 순성안내 쉼터에서 잠시 쉬었다.
성곽을 따라 가면서 여장과 원총안 근총안 또 타구, 옥계석을 다시 공부해 본다. 반복학습의중요성을 깨닫다.ㅎㅎ인왕산 성곽의 암문暗門이다. 성곽에 문루를 일부러 세우지 않고 뚫은 문인데, 적이 모르도록 비밀스럽게 물자를 이송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성곽을 걸으면서 서흥 상말과 봉산 상말의 각자를 찾았다. 한참 걸어오니 멀리 인왕산이 보인다. 높이 338m로 사방신 중 서쪽을 수호하는 우백호에 해당하는 산이다. 겸재 정선이 백악산 줄기의 산등성이에서 인왕산 쪽을 바라보며 76세에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린 '인왕제색도'도 있지 않은가?

마치 스님이 장삼을 입고 서 있는 것처럼 보여 ‘禪바위'라 불렀다는 2개의 거대한 바위가 보이고 그 아래에 국사당이 있다. 남산에 있던 국사당이 인왕산 자락에 1925년 일제가 남산에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태조와 무학대사가 기도하던 자리인 인왕산 자락으로 옮겼단다. 그들의 눈으로 봐도 국사당 자리가 탐났던 모양이다.

치마바위의 유래에 대해 간단히 해설해 보라는 교수님의 문자를 받은 나는 중종과 단경왕후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간단히 멘트 했다. 반정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살해된 신수근의 딸이 중전이 되는데 위협을 느낀 공신들은 역적의 딸이 중전이 될 수 없다는 명분으로 단경왕후 신씨를 폐비시키고 만다. 중종과 금슬이 좋은 신씨 단경왕후는 왕비에 오른 지 7일 만에 폐비되어 인왕산 아래 사가로 돌아가게 되고 신씨가 그리운 중종은 때때로 경회루에 올라 부인이 사는 인왕산 쪽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소식을 전해들은 신씨는 자신을 보고 싶어 하는 중종의 마음을 달래려 경회루에서 잘 보이는 인왕산 바위에 신혼 때 즐겨 입던 다홍치마를 하루도 빠짐없이 널었다고 전해진다. 이 바위를 치마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그 시대의 역사를 알고 서로 연결하여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실감했다. 해설해 주시는 교수님이 존경스럽고 고마움이 느껴진다.

인왕산이 우백호라더니 호랑이 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다. 내려가는 길에 해설사 교수님께서는 큰길로 곧장 가도 되는 길을 우회하여 산길로 돌아가는 여유를 갖자고 하시면서 말씀해 주시는 여유餘裕의 의미가 강한 여운으로 남는다. 餘裕가 우리 삶에 꼭 필요함을 느껴본다. 무무대에 오르며 내려다보이는 성곽이 참 아름답다. 곡선의 미를 느낄 수 있어 더 좋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잠시 한 컷~ 바위에 새긴 ‘서시’를 읽다. 독립운동의 죄명으로 투옥되어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쓸쓸히 가신 시인의 명복을 빌어본다.

오늘은 아이들도 동행하는 기특함을 보여 주었고 새로이 참석하신 분이랑 함께하여 즐거웠다. 참 멋진 답사 진행해 주신 교수님께 심심한 감사드린다. 3시간 반 동안 열심히 걸으며 공부한 우리는 뿌듯함을 느끼며 창희문 가까이 있는 늘품에서 얼큰한 코다리 찜과 생태찌개로 피로를 씻어냈다.


새서울뉴스  신성덕 기자
sducksh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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