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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신성덕 칼럼
한양도성을 걸으며 역사를 만나다한양도성을 관통하는 길을 걷다
신성덕 기자  |  mhy3665.mh3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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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29  17: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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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서울뉴스  신성덕 기자  : 서울한양도성 해설사의 안내로 지난 5월 26일(금) 한양도성 관통하는 길을 걸었다.

   
   
   
   
 

서대문 돈의문 터~광화문~피맛골~종각~탑골공원~종묘~흥인지문까지 한양도성을 관통하는 길을 답사한다. 우리 일행 7명은 서대문 4번 출구에서 만나 출발했다. 광화문 쪽으로 가는 새문안로의 4.19혁명 기념도서관은 4.19혁명 후 이기붕 일가의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곳이다. 그의 가족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고 그의 집 자리에는 4.19혁명 기념도서관이 들어서 있다.

새문안로에는 박물관이 많이 모여 있다. 조선시대부터 현재 경찰청 시대에 이르기까지 경찰의 역사를 전시해놓은 경찰박물관이 있고 서울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정리해서 보여주고 있는 역사박물관이 있다.

역사박물관에 가기 전 흥화문이 보인다. 조선왕조의 몰락과 일제시대의 아픔을 품어버리고 외롭게 서 있는 흥화문. 비운의 경희궁 정문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현재 장춘단 자리인 박문사 정문으로, 광복후엔 신라호텔 영빈관의 정문으로 사용하다가 경희궁터로 옮겨 왔다니...기존 궁궐의 정문이 2층 문루 형태로 되어 있는데 반해서 흥화문은 단층으로 지어졌다. 광해군이 경덕궁(경희궁)을 세울 때 공사 중지를 주장하는 신하들을 설득하기 위해 간략하게 단층으로 세웠다고 한다.

5대 궁궐 앞에 다 있는 금천교가 흥화문 앞에 놓여 있다. 임금 배알 시 궁궐의 문을 들어온 사람이 궁궐 내부로 들어가고자 할 때, 그 경계의 의미로 만든 다리다. 일제가 이곳에 학교를 지으면서 파묻었던 것을 서울역사박물관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석재의 일부가 발견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했다고 한다. 서울역사 박물관은 경희궁터에 자리하고 있다. 매월 첫 주 금요일 오후 2시면 이 곳 강당에서 열리는 우당역사문화강좌에 참석하곤 한다.

광화문 흥국생명 사옥 앞에 거대한 조형물이 망치질을 하고 있다. 움직이는 조형물 해머링 Hammering Man이다. 지나다니면서 이 조형물이 늘 궁금했었는데 이 기회에 흥국생명 홈페이지를 열어 보았다.

미국 조각가 조나단 보로프스키 Jonathan Borofsky 작품이다. 전시장이 아니라 야외에. 세계 여러 도시의 공공 장소나 빌딩 앞에 조나단 보로프스키의 대형 조각 작품들이 많이 있다. 1980년 Paula Cooper Gallery에서 조각으로는 처음 전시된 후 독일 프랑크푸르트, 스위스 바젤, 미국 시애틀 등에 이어 일곱 번 째로 2002년 흥국생명 빌딩 앞에 세워졌다고. 초현실적인 철재 거인은 50톤의 육중한 몸체, 22m의 키로 역대 '해머링 맨'중 최고 장신이다. 내면을 돌아볼 기회가 없는 현대인들의 각박하고 천편일률적인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구세군 회관 1층에 기독교 서점 '생명의 말씀사'가 있다. 서울 미래유산이다. 이 곳을 지나 광화문 사거리로 들어서니 귀퉁이에 조그만 전각이 보인다.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라고. 그러고 보니 '紀念碑殿'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고종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의 칭호를 쓰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단다. 차량소음속에 파묻혀 먼지만 뒤집어 쓰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진다. 무심히 지나쳤는데 다음에 자세히 보리라.

서대문이었던 돈의문에서 광화문 광장으로 연결되는 서울도심의 동.서축이 되는 대로를 걷고 있다. 예전에 버스를 타고 다녔을 때는 어느 정도 길을 알았었는데 지하철을 이용하여 다닌 뒤 부터는 거리 감각이 떨어진다.

피맛골(避馬+골) 은 종로1가에서 종로6가까지 이어지는 비좁은 골목길이다. 종로를 지나는 고관들의 말을 피해 서민들이 애용하던 뒷골목이다. 당시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말을 탄 고관대작을 만나면 행차가 끝날 때까지 엎드려 있어야 했으니 갈길 급한 서민들이 얼마나 불편 했을까? 그래서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골목이란다. 재개발을 허가받아 공사하는 중에 조선시대 유물이 다수 발견되고, 역사적인 전통거리가 사라진다는 비판이 재기되어 다시 보존하기로 했단다. 다행이다. 조선시대 피맛길 시전행랑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지금의 SC제일은행 본점 자리는 조선시대 특별 사법기관인 의금부가 있었던 곳이다. '조선조 관리 양반 범죄를 담당하던 관아자리'라고 써 있다. 삼성 종로타워가 들어서 있는 곳은 한국상업계의 선도적인 구실을 했던 옛 화신백화점 터다. YMCA 기독교청년회 건물이 우뚝 서 있다.

종각역 가까이 있는 보신각.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대한민국 보물 제2호 종각(보신각) 동종은 1985년까지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제야(除夜)의 종을 칠 때 사용되었다.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새로 만든 종으로 타종하고 있다. 도성의 문이 열리고 닫힘을 알리기 위해 종을 치기 시작했단다. 새벽 4시에 33번, 밤 10시에 28번 종을 친다. 정오에도 타종을 하는데 일반인들도 예약하면 칠 수 있다고 하여 우리도 타종할 기회를 갖자고 했다.

종로 3가에 있는 서울 최초의 근대식 공원인 탑골공원에 이르다. 우리에겐 파고다 공원의 명칭이 오히려 익숙하다. 사적으로 지정되면서 탑골공원으로 호명 되었단다. 무료로 개방해 많은 시민들에게 도심 속의 아늑한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삼일문이 보인다. 공원 안에는 팔각정과, 원각사지 10층석탑, 대원각사비, 앙부일구 등의 문화재와 3·1운동 기념탑, 3·1운동 벽화, 의암 손병희 동상과 한용운 기념비 등이 있다. 탑골공원에서 3·1 운동의 싹을 틔우다. 탑골공원은 원각사 절터에 만들어 황실 공원으로 지어졌다. 독립 선언서를 낭독했던 팔각정, 만세 시위 모습을 새긴 부조판, 손병희 선생의 동상을 볼 수 있었다.

원각사비는 조선시대의 독특한 조각 형태를 보여주는 보물 제3호이고 원각사 10층 석탑은 조선시대 최고의 석탑으로 대한민국 국보 제2호다. 10층 석탑은 1467년(세조 13년)에 권력을 움켜쥔 세조가 원각사를 짓고 2년 후 탑을 완성하여 탑안에 사리와 '원각경'을 넣었단다. 당시 탑의 건립이 특히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높이 12m. 전체를 대리석으로 만들었고 3층까지 4면 돌출형(또는 亞자형)의 평면, 4층 탑신부터는 정사각형 평면으로 되어있다. 인물과 연꽃 당초 무늬가 양각되어 있어 조선 초기의 조각양식 연구에 중요하다. 또한 부처 관련 이야기, 현장법사가 인도에 다녀온 '서유기'가 새겨져 있어 불교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런데 잔뜩 기대를 하고 보러 왔던 아름다운 모습 국보 10층 석탑을 왜 이렇게 작은 유리관에 가둬 놓았을까? 유리가 빛에 반사되어 잘 보이지 않는다. 보호하려고 그리 했겠지만 유리관을 더 크게 하고 반사되지 않는 유리를 썼으면 더 좋았을 텐데.. 양각을 제대로 볼 수 없어 안타까웠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공원에서 나오니 '송해길'과 만난다. 연예인 송해가 낙원동을 고향삼아 활동하고 한 길을 걸어온 문화인이 됐기에 예우하는 뜻에서 만들었다고. 종로3가 피맛골. '능라밥상'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능라밥상'은 북한 전통음식점이다 남북한의 음식문화 연구를 통해 통일을 준비하는 북한 전통음식문화연구원은 이애란 원장이 운영하고 있다. 북한의 숨겨진 음식들을 맛있고 정갈한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능라밥상의 운영원칙이 정직함과 성실함이며 직원들이 모두 탈북자라고 해설사 신성덕 교수님께서 귀띔해 주신다. 탈북인 1호 박사인 이애란박사와 기념촬영을 하고 통일기원 기부함에 약간의 기부를 하고 나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관 중에 하나인 단성사 건물이 얼른 눈에 띈다. 극장이 드물던 개화기부터 광복 직후까지 연극과 영화상영의 주요 근거지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극장이다. 조선시대 여섯가지 상품을 팔던 상설 거리인 육의전 터도 보인다.

종묘, 역대왕 들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왕실의 사당이다. 조선을 창건한 태조가 한양으로 천도한 뒤 현재의 종묘와 사직을 세웠다. 종묘는 세계문화유산이다. 좌묘 우사, 경복궁을 중심으로 왕실의 사당에 해당하는 종묘는 그 좌측에 배치하고 곡식과 토지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사직단은 그 우측에 두었다.

종묘의 입구에는 조선시대에 세워진 하마비(下馬碑)와 어정(御井)이 자리 잡고 있다. 비의 전면에 '대소인원은 이곳에 이르러서 모두 말에서 내리라'고 쓰여 있다. 어정은 조선 역대 왕들이 종묘에 왕래할 때 물을 마신 우물로 서울 4대문 안에 이 우물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고 한다. 이 곳도 명당수가 흐르는 금천교가 있다.

100년이 넘은 광장시장과 돈의 기를 모아 부자가 되었다는 세운상가가 길 건너 보인다. 종로 꽃시장에는 갖은 꽃들이 피어있다.

흥인문(동대문)은 문루와 여장이 보수공사 중이었다. 다른 문에서 볼 수 없는 옹성이 있는 것이 특색이며 돌로 쌓은 옹성의 석벽은 이중으로 되어 있다. 원래의 이름은 흥인문(興仁門)으로1396년 태조 5년에 건립되었는데 보통 동대문이라고 부르고 보물 제1호로 보존되고 있다. 흥인지문(興仁之門) 밖에 수준점이 있었다. 고도를 결정하는데 표준을 삼기위한 것으로 해수면의 평균 수위이다. 이 곳 수준점이 20m라고 쓰여 있다.

우리 답사팀 7명은 한양의 돈의문에서 출발 흥인지문까지 관통을 하며 국보 2호와 보물 1호, 2호, 3호를 모두 답사했다. 무심코 지났던 이 거리를 보면서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서울에 있음이 자랑스러웠다. 이 곳을 걷는 우리도 대단함을 느끼며 자세한 설명으로 자부심을 갖게 해주신 해설사 님께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새서울뉴스  신성덕 기자
sducksh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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